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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사 

고종황제


고종황제의 생애

고종황제는 1852년 7월 25일 흥선대원군 이하응과 여흥민씨

사이에서 둘째아들로 테어났습니다.

 

철종이 후계자를 남기지 않고 죽자

후계자로 지목되어 왕위에 올랐습니다.

 

 

12살이라는 어린나이에 왕이 된 것이죠.

 

따라서 어린 시절에는 아버지인 흥선대원군의

말에 따라 정치를 했습니다.

 

이것이 10년동안 지속되었는데

22살의 성인의 나이가 되자,

자기 생각대로 정치를 펼쳐 나갑니다.

 

고종때는 조선에 많은 일들이 벌어집니다.

 

일본이 운요호를 몰고 와서 일으킨 운요호 사건,

운요호 사건으로 인해 강화도조약

체결하고 개항을 하게 되죠

 

이후 구식군인들이 차별에 못이겨

임오군란을 일으킵니다.

 

임오군란과 관련된 자세한 내용은 아래 글을 한번 보세요

-임오년의 쿠데타 중전민씨를 잡아라, 임오군란


임오군란 이후에는 김옥균과 가튼 개화파들이

갑신정변을,

 

동학교도들이 동학을 인정해달라며, 일으킨

동학농민운동,

 

동학농민운동에 끼어든 일본과 청사이에

청일전쟁,

 

일본이 명성황후를 시해한 을미사변 사건,

 

위협을 느낀 고종이 러시아공사관으로 가게 되는

아관파천 사건

등등....

 

휴!~~~~

고종 집권시기에는

정말 많은 일들이 있었네요

 

대혼란의 시기였습니다.

 

 

 

아관파천이후 고종은

대한제국으로 국호를 고치고,

연호를 광무로 하는 등

자주국임을 선포하는

대한제국 선포와 함께 광무개혁을 시행합니다.

 

하지만 얼마 못가 러일전쟁이 일어났으며,

일제의 야망에 의해

을사늑약이 결국 체결되어,

 

외교권을 뺏깁니다.

 

이에 고종은 헤이그에 특사를 보내는 등

노력을 해보지만

경솔국치로 1910년 완전히 일본에 나라를 뺏깁니다.

 

이후 망국의 군주로 물러난 이후

1919년 1월 21일 승하합니다.

 






 

고종황제의 업적

식산흥업정책


십개의 학교가 설립되었으며, 근대식 은행,

근대식 화폐제도 도입, 전국 광산 설립, 공업개혁에 박차!

이로 인하여 대한제국은 점차 근대화 국가를 갖추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놀라운 사실은 고종황제는 아관파천 후

용암포, 진남포, 제물포를 잊는 지역을

동북아 물류센터를 만들어서

부국강병을 이루고자 하는 밑바탕을 그려두었었다고 하네요.








이러한 흐름은 러시아 황제의 승인도 받았고,

프랑스로부터 약속까지 받았기 때문에

진짜 조선의 근대화 부국강병의 꿈은 시간문제로 봐도

무리가 없었다고 합니다.

근데 이러한 흐름을 막은게 누군가? 바로 일본인거죠,



정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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