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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사 

임진왜란



개요


조선 왕조가 세워진 지 정확히 200년 후에 일어난

16세기 말 동아시아의 정세를 뒤흔든 국제 전쟁,

임진왜란임진년에 일어나서 

임진왜란이라고 합니다.



배경


전쟁의 원인에는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정복욕이 주된 요인 입니다.


조선은 건국 후 200년 간의 평화로 성을 쌓거나 

군사훈련을 하는 등의 전쟁 준비에 심한 반발이 있었습니다. 


제승방략의 방위체제는 무너져 있었고 

군인은 문서상으로만 존재하고 실재로는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조선의 국력이 완전히 쇠약해진 것은 

연산군 시대부터입니다.

연산군 이후 명종대에 이르는

4대 사화, 훈구, 사림세력 간에 

계속된 정쟁으로 인한 중앙 정계의 혼란, 


사림 세력이 득세한 선조 즉위 이후 

격화된 당쟁 등으로 

정치의 정상적인 운영을 수행하기 

어려운 지경이었습니다.



국력은 점점 쇠퇴하고 문약에 빠져 

근본적인 국가 방어책이  세워지지 못했습니다.


조선이 이렇게 힘들 때 일본에서는 

유럽 상인들이 들어와 신흥 상업 도시가

발전되어 일본도 점점 발전되고 있었습니다.


도요토미 히데요시라는 인물이 등장하여 혼란기를 수습하고 

전국시대를 통일하고 

봉건제의 지배권을 강화하는 데 

전력을 기울였습니다.


일본 전국통일에 성공한 도요토미는 오랜 기간의 싸움에서 

얻은 무사들의 강력한 무력을 해외로 방출시켜 

국내의 통일과 안전을 도모하고 

신흥 세력을 억제하려는 대륙 침략의 

꿈을 꾸고 있었습니다.


다시말해 일본 내부의 단결을 위해 

임진왜란을 생각하고 있던 것입니다.


일본은 조선이 쇠약해졌다는 소식을 듣고

전쟁을 하기로 결심합니다.



전쟁의 경과

전쟁을 하려면 명분이 필요합니다.

그래서 일본은 명나라로 가는 길을

열어달라는 요구를 합니다.


하지만 조선이 거절을 합니다.

이에 일본은 군사를

이끌고 부산 앞바다에 나타났습니다.

그리고 부산진성과 동래성을 순식간에

무너뜨리고 한양으로 돌격했습니다.


선조는 신립 장군을 믿고 왜군과 

싸우라고 보냈습니다.


하지만

조선의 관군이 패하자 의병이 

생기고 일본군이랑 싸웠습니다.


의병이란 나라를 구하기 위해 스스로

일어난 의로운 병사들을 뜻합니다.


당시 의병장으로 이름이 높았던 사람은 

가장 먼저 의병을 일으킨 

경상도의 곽재우와 정인홍, 충청도의 조헌, 

전라도의 고경명과 김천일, 

함경도의 정문부 등이 있었습니다.


의병 이후 명나라의 지원군이 왔고

조명연합군이 결성됩니다.


의병과 조선관군이 대승한 전투가 

있는데


바로

임진왜란의 3대 대첩 중

하나인 행주 대첩이 있습니다.

행주 대첩 당시 성안에는 부녀자들이 

긴 치마를 잘라 짧게 덧치마를 만들어

돌을 주워 병사들에게 나눠 주었고 

그 돌로 병사들이 맞서 싸워 이겼습니다.




전쟁의 결과

전쟁이 계속되고 일본군의 피해가
계속 커지자 일본의 잠시 휴전하자고
제의하였습니다.


결국 휴전 재의를 승낙하고 이렇게 
임진왜란이 끝났습니다.




정리

1.임진왜란 전 조선의 국력은 많이 쇠퇴해져 있었다.


2.일본 전국통일에 성공한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일본 내부의 결속 강화를 위해 명분을 세우고 임진왜란을

일으켰다.


3.조명연합군과 의병의 활약으로 한산도대첩, 진주대첩

그리고 행주대첩의 승리로 일본군은 많은 피해를 입었고

휴전을 하며 임진왜란은 끝이 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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